샌프란시스코, 무지개를 만나는 Castro St.
금요일 저녁, 늘 그렇듯 불러주는 이 없이 하릴없이 뒹굴거리는 인생. 그러다 저녁즈음 레나에게서 영화 같이 보자는 연락이 왔다. 마침 우리집이 비어서, 우리집에 모여서 세 명이 같이 DVD를 보기로 결정!

  
실제 Harvey Milk & 영화에서 Harvey 역을 맡은 숀 펜

레나와 마들렌이 빌려온 영화는 숀 펜 주연의 "MILK". 샌프란시스코 게이 시의원으로 게이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하비 밀크(좌측)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는데, 자막없이 보긴 했지만 책에서 읽은 적도 있고 수업시간에 들은 적도 있어서 사건의 전후 내막은 대충 알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 포스터를 봤을 땐 특유의 따뜻한 느낌때문에 우유에 관한 영화인가 (.........) 하는 1차원적인 생각을 했던 영화이지만, 실제 영화는 우유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 하하. 

(사진 출처: Naver 영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 모두 꽤 깊은 인상을 받았어서 그 다음날 함께 하비 밀크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배경이자 샌프란시스코 LGBT 커뮤티니의 중심인 카스트로 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배경이자 촬영장소가 된 곳에 바로 가볼 수 있다니, 이것도 참 신기한 일인듯...

토요일 아침, 평소에도 잘 못일어나는 것을 부지런을 떨어가며 10시에 친구들을 만나, Bart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Civic Center 역에 도착한 것이 11시가 좀 못 되었을 무렵. St.Patrick Day를 앞두고 시청 광장 앞에선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행인에게 물어보니 퍼레이드도 곧 있을거라고 하던데,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우리 모두 목적은 Castro 거리였으므로 과감히 포기. 그냥 준비중인 몇몇 가게들만 스윽 둘러보았다. 일찍 나온 시민들은 모두 녹색 옷에, 녹색 모자에, 녹색 악세서리들로 요란스레 치장.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Irish Green. 주말치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San Francisco Civic Center

시빅센터는 이따금씩 샌프란 서쪽으로 갈때 오다가다 슬쩍 지나치기만 했지 자세히 본 적은 없었는데, 어쩐지 영화를 본 후에 와보니 새삼 새롭게 보였다. 이 곳에서 하비 밀크가 일했겠구나, 모든 역사가 여기에서 씌어진 것이로구나 싶어서...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날 만큼은 그 말이 들어맞는 날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모르게 90년대 철거되었던 국립중앙박물관(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기도..=_= 내부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시빅센터에서 카스트로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약 3-40분 정도. 유니언스퀘어와 피셔맨스 워프를 거점으로 한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은 언덕이 높기는 해도 의외로 걸어서 다닐만한데, 서쪽이나 남쪽지역은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지역이 넓어서 인 까닭도 있고, 치안이 그닥 좋지 않은 까닭도 있고... 그래도 이 날은 날씨가 워낙 좋고, 나도 친구들과 함께 있었고, 돈도 쓰고싶지 않았으므로(ㅋㅋㅋ) 그냥 걷기로 했다. 유니언 스퀘어에서는 Market st.에서 서쪽으로 가는 F 뮤니를 타면 카스트로까지 바로 갈 수 있다. 
카스트로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무지개색 깃발이 보이기 시작한다. Rainbow Flag는 Gay Pride Flag라고도 불리는데, 동성연애자들의 상징이다. 깃발이 많아질 수록 카스트로 거리가 가까워옴을 실감할 수 있다.
날씨가 좋아 신이난 두 명의 노르웨이 아가씨들 ㅋㅋ

점점 더 많아지는 Rainbow Flags. 이쯤부턴 게이 커플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이상하다거나 신기하다고 생각될 겨를도 없는...
카스트로 거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간판의 Castro Theatre. 이 극장은 카스트로 거리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데,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니 1910년에 개관, 1920년대 중반 지금의 위치에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단다. 이날은 Alice in Wonderland가 개봉한 날이어서, 극장 앞에 줄이 무척이나 길었다.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극장! 이곳은 1976년 샌프란시스코의 100번째 Historic Landmark가 되었다고 한다.
어쩐지 이 날은 영화에 너무 몰입해버린 탓에 디테일한 사진보다는 무지개 깃발들이 곳곳에 걸려있는 큰 길 사진들만 찍게 되었다. 아마도 영화가 시작할 즈음 비춰주었던 1920년대 카스트로 거리의 이미지를 본 탓이 큰 듯... 우리들은 하비 밀크가 운영했다던 Castro Camera 가게를 찾으려고 근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을 순 없었다. 영화에 나온 곳으로 짐작이 되는 자리에는 신발가게만 있었는데, 아마도 영화 촬영이 끝나고 그냥 별 사인 없이 다른 가게로 바뀐 듯 했다. 
다정한 게이 커플
왠지 모르게 내 인식 속에 게이와 히피가 관련되어 생각되던 탓에, 이곳에 오기 전엔 카스트로 거리에 가면 Drug 냄새가 진동하고 길거리도 지저분하고 온갖 그래피티들이 난무할 것만 같은...전형적인 히피거리를 예상했었더랬다. 하지만 이곳을 둘러보고나니 그건 내가 갖고 있던Stereotype임이 확실해졌다. 거리는 무척 깨끗했고, 사람들도 행복해보이고, 모두 neat 했다.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나의 감상을 이야기하자, 이곳에서 파티나 축제가 있으면 수많은 드랙퀸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광란의 파티가 계속되서 어쩌면 내가 처음에 상상했던 것 같을 수도 있지만, 평소에도 늘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귀띔해주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수많은 무지개 깃발만큼이나 정말, 정말, 정말로 개가 많았다는 것. 버클리도 개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더랬다. 아마 내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개를 본 곳이 카스트로 거리가 아닐까...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곳의 사람들은 개를 정말 사랑하는 듯 했다. 영화 중간에 하비가 개 배설물을 거리에 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은 이게 왜 이렇게 등장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이곳에 와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그 법안이 없었다면, 이 길이 모두 개똥으로 가득찼겠지! 내가 갔을 때 거리는 개들만 많았고 개똥은 없이 깨끗했다. 하하.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카스트로 거리에서 유명하다는 도넛 집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하고 (ㅠㅠ 도대체 이날 찾은게 뭐지...) 등산을 좋아하는 레나의 제안으로 근처에 있는 아무 언덕에나 올라가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올라간 언덕은 Buena Vista and Dolores Park 였다.


(다음 포스팅에 계속)
by Jackim | 2010/04/05 17:04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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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1/07/0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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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ackim at 2011/07/11 23:21
답글이 늦었네요. 개인적인 용도라면 사용하셔도 괜찮습니다. :)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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